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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징표 야간통행증
박상동 인생수첩
 
서부신문 기사입력  2020/06/20 [23:12]

 

이사짐을 챙기다가 서랍 속에서 45년 전에 가슴에 달고 다니던 야간통행증을 발견했다. 공무원증도 아니고 명함도 아니다.

야간통행증이다.

색깔이 조금 퇴색되기는 했으나 지금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것만 가지고 다니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야간 통행금지 시간에도 집밖을 다니도록 특별히 허가한다는 증명서. 광복이후 어수선한 시절 사람들을 등치던 수사기관 정보원들이 꼭 갖고 다니던 것도 야간 통행증이다.

단지 밤에 다니도록 허가한다는 증명서 한 장이 뭐 그리 대단했겠나마는 심야거리를 유유히 활보 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 중의 특권을 지녔던 것같다.

조선시대 '마패(馬牌)'가 원래는 관리가 말()을 징발할 수 있는 권리를 표시한 징표였지만, 암행어사의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는 허가증처럼 되었듯이 야간통행증도 마찬가지였다. 통금이 해제된 1982150시까지 37년간 야간통행증이란 통행 허가증명서. 솔직히 말해서 이 놈만 갖고 있으면 세상에 무서울게 없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이 증명서는 장,차관과 주요 공공기관 간부들에게 우선 발급되다가 의사, 신문기자, 그리고 신분이 확실한 자로서 야간 통행을 부득이 필요로 하는 자'로 정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도둑놈들도 어디서 발급받았든지 이것을 이용했다는 기사도 심심치않게 나왔다. 심지어는 열차를 타고 심야에 내리면 팔뚝에 임시야간통행이란 도장을 찍어주기도 하고 발급해 주기도 했다.

나에게는 이 통행증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박상동 한의원이란 앰브란스를 타고 서울 전역을 돌아다니며 응급환자 댁을 방문하여 갑자기 쓰러져 숨을 못쉬는 환자들을 치료했다.

가족들은 살려줘서 고맙습니다고 반가워 하는 모습에 피로한 줄을 몰랐던 그 시절이 있었다. 조선시대 혜민원(惠民院) 모습을 제현한 정도 600년 기념으로 파고다 공원에서 어의(御醫) 행열이 있었다.

가마 위에 어의 복장을 하고 종로거리를 지날 때 나에게 치료받았던 환자가 행열로 뛰어들어 어디 사는 누구입니다. 당시에 나를 살려주어 고맙습니다하고 고마워하는 것을 보고 인생의 참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의사생활 50년 동안 100만 명 이상을 불쌍한 환자를 위해 봉사해 왔다. 그 덕분에 동서한방병원이 살아남아 강북에서는 우리병원과 혜당한방병원이 존재하고 있다.

이 모두가 노력함 속에 중요한 삶의 진리가 숨어있는지 모르겠다.

<본지 회장 박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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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6/20 [23:12]  최종편집: ⓒ seobunews.co.kr